[미디어한국] 얼마 전 길에서 어떤 기인(奇人)과 나누었던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처음 이 기인의 신상에 관하여 들은 것은, 오래전 고인이 된 우진 조휴봉 선생으로부터 구례읍 오거리 인근에 산다는 것과 사람들은 돌았다고 (미쳤다고) 하지만 언행을 보면 결코 예사로 볼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전부다. 어쩌면 진짜 숨은 도인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지금은 같은 봉성산을 의지하며 사는 주민으로 가끔 오가다 스치면 인사하는 정도지만, 내가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60 중반쯤) 이 기인을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여기 봉성산으로 이사 오던 해 봄날 오후였다.
(사실 여부는 확인 불가) 젊어서 도를 닦다가 돌아버렸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번잡한 오거리 길거리에서 나를 보더니, 봉성산으로 이사 온 것을 환영한다면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판을 치며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가지고 서로 다투면서 허송세월하는 세상이다.” “이것이 한국불교의 희극이며 절망인데 선생님을 보니 희망이 보인다”라며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그 순간 길거리에서 처음 맞닥트린 기인에게서 듣는 낯 뜨거운 인사의 당혹스러움보다, 놀라움과 함께 결코 예사로 볼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우진 조휴봉 선생의 이야기가 떠 올랐다.
그날 내 상황이 기인을 모시고 옆에 있는 청자다방에 들어가 차를 마시거나, 아니면 한솔식당에 가서 막걸리라도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볼 형편이 아니어서, 좋게 봐줘서 고맙다는 인사만 전하고 헤어졌다.
기인에 관하여 오래전 우진 조휴봉 선생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젊은 시절 내가 했던 소리를 그가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초 당시 저 유명한 가야산에서 촉발된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두고 종교계와 학계에서 논쟁이 일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어느 모임에서 질문을 받고, “깨달은 사람은 행하는 것이니 행하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다투는 깨달음과 수행 즉 오(悟 깨달음)와 수(修 수행) 둘 가운데 무엇을 앞세우고 어떻게 해석하든, 각자가 인연을 따라 깨달음으로 나가는 방법일 뿐 옳고 그름이 아니다. 깨달음의 본질을 벗어난 것으로 부질없는 말장난이라는 뜻이다.
오(悟)와 수(修)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은 본질이 아닌 논일뿐이므로, 그것을 알든 모르든 행하는 사람에게는 행만 있을 뿐, 깨달아야 할 깨달음도 없고, 닦아야 할 뭣도 더는 없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들은 논과 행을 합일 할 수 없는 평행선으로 보지만, 우주의 본질인 자연에서 보면 오직 행만 있을 뿐, 논은 (끝이 없는 번뇌 망상일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처음부터 없었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논쟁은, 본질을 왜곡하는 세속의 식자들이 벌이는 논쟁을 위한 논쟁이었을 뿐,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는 묻고 따져서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 젊은 날의 기억과 함께 각인된 기인을 얼마 전 길에서 만났다. 3년 전의 일이 생각이 나서,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냐고, 그러면 어찌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쓸데없이 묻고 따질 시간에 행하면 될 뿐”이라고 하였다.
일고의 망설임도 없는 행하면 될 뿐이라는 기인의 말을 듣고는 호기가 동하여 농반진반으로 지금 정치는 어떠하냐고 물었더니 거침없는 욕설을 뱉으며 주댕이로만 정치하는 도둑놈들이라고 하였다.
기인의 말을 정리하면, 개혁이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자유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개혁과 민주주의를 가지고 맨날 싸운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폐단이고 절망이라는 것이다.
기인의 지적은 정확한 핵심이다. 현대 한국 정치는 아이러니의 극치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장 자주 외치는 자들이 정작 그 의미를 모른다. 한마디로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들이 일으키는 탐욕의 칼질만 난무하고 있다.
개혁은 권력 쟁취를 위해 정적들을 죽이고 방해가 되는 법과 제도를 제거하는 칼이 돼버렸고, 자유를 부르짖으면서 타인의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와 권리를 억압한다.
법과 상식은 내로남불이 된 지 오래고,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독단을 일삼으며 독재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한국의 정치는 지켜보는 국민의 관점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희극이자, 회피할 수 없는 절망이다.
지금 이 땅의 정치인들이 외치는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개혁은 마치 허공에 매달린 허깨비와 같다. 잡으려 달려들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비어 있는 바람뿐이다. 연꽃처럼 피어나야 할 그 이름들이, 어느새 권력의 흙탕물 속에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마치 옛 선방에서 벌어지던 희극을 닮았다.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뭔지도 모르는 승려들이 그 개념으로 싸우던 모습 그대로 똑같다.
깨달음이 없는 깨달음의 논쟁, 본질 없는 언어의 전쟁. 지금 정치권의 자유와 민주주의 논쟁도 그렇다. 그들은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 이름을 권력 쟁취의 창과 방패로만 쓰는 것이, 기인이 말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가 뭔지도 모르는 중들이 싸우는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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