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율과 생존을 위한 AI의 전면 배치
● 가상 배우의 등장과 ‘창작의 인간성’ 논쟁

      인공지능 가상 캐릭터 방송 이미지 = Gemini 제작
      인공지능 가상 캐릭터 방송 이미지 = Gemini 제작

[미디어한국] 2025년, 전통 방송 산업은 시청률 하락과 광고 감소, 인력 유출 등 복합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위기의 한가운데서 ‘AI(인공지능)’가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방송의 제작 방식과 운영 구조, 심지어 ‘예술의 정의’까지 바꾸고 있다.

미국의 지역 방송국들은 이미 AI를 실무에 적극 도입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미국 방송기자협회(RTDNA)의 조사에 따르면, 지역 방송국의 약 3분의 1이 AI 도구를 사용 중이다. 인력난을 겪는 소규모 뉴스룸에서는 회의 기록과 요약, 기사 초안 작성에 AI를 활용해 기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AI가 회의록을 자동으로 정리해주니, 기자들은 더 많은 취재와 분석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형 방송사들도 AI를 통한 효율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클레어 방송은 AI 실시간 번역 기능을 활용해 지역 뉴스 생방송을 영어와 스페인어로 동시에 송출하며, 다양한 커뮤니티와의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또 미국 가넷(Gannett) 그룹은 기사 초안 작성에 AI를 활용하지만, 반드시 ‘AI가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밝히고 최종 검수는 사람이 담당하도록 해 투명성과 신뢰를 지키려 하고 있다.

AI는 단지 업무를 빠르게 하는 도구를 넘어 콘텐츠 전략 자체를 혁신하고 있다. 폭스(Fox)와 자회사 투비(Tubi)는 AI 영상 분석 기술을 통해 경기의 명장면이나 예기치 못한 장면을 자동으로 추출하고, 이를 숏폼 콘텐츠로 빠르게 재가공한다. 투비의 최고마케팅책임자는 “AI는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역량을 확장시키는 도구”라고 말한다. 실제로 AI는 영상 편집, 댓글 관리, 성과 분석 등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 처리해, 창의적 인력들이 더 높은 가치의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이와 함께 ‘AI 배우’의 등장은 방송과 영화 산업에 새로운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 출신 프로듀서 엘리네 반 더 벨덴이 만든 가상 여배우 ‘틸리 노우드(Tilly Norwood)’가 화제가 됐다. 틸리는 실제 사람이 아닌, 이미지 생성·음성 합성·3D 모션 기술을 결합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캐릭터다. 표정, 시선, 감정 표현까지 정교하게 구현해 인간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대화형 언어모델(LLM)을 활용해 팬과 대화하거나, 대본을 스스로 해석해 연기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제작사 측은 “AI 배우를 활용하면 촬영·스케줄 비용을 줄여 제작비를 최대 90% 절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윤리적 논란을 불러왔다. 헐리우드 배우노조(SAG-AFTRA)는 “AI 배우는 인간 노동을 위협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일부는 틸리가 여러 여성의 얼굴을 합성한 결과물이라며 초상권 침해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AI 기술의 발전이 ‘창작의 인간성’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새로운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방송계도 이러한 흐름을 주시해야 한다. AI를 통해 제작비를 줄이고, 언어 장벽을 넘어 글로벌 진출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기회다. 하지만 동시에 초상권, 저작권, 배우 노동권 보호 같은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AI 배우가 등장하더라도, 그 배경에는 인간의 상상력과 감정이 여전히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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