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엄의 눈으로 본 ‘살아있음’의 의미
[미디어한국]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고, 늙고, 그리고 언젠가 죽는다.
겉으로 보면 그것은 정해진 순서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끝없는 우연과 인연의 그물이 얽혀 있다.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그 모든 일들이 과연 내 뜻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릴 적 꿈꿨던 일들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대신 전혀 예상치 못한 길 위에 내가 서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길이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었음을.
인연은 계산으로 짜여 지지 않는다.
부모의 만남, 태어난 시기, 자라난 환경, 스쳐 간 사람들, 읽었던 책 한 줄, 바람처럼 스친 한마디 말 —
그 모든 것이 얽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내 뜻으로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인연이 나를 이끌어온 것이다.
이 깨달음은 처음엔 허무하게 들린다.
‘내 삶이 내 뜻이 아니었다면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바로 그 깨달음 속에서 자유가 시작된다.
모든 일을 통제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인연의 흐름 속에서 맡겨 사는 평화가 깃든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인연의 뜻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그렇다고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인연 속에 태어났지만, 또 다른 인연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면, 그 인연이 또 다른 생명을 낳는다.
내가 베푼 작은 선의가 누군가의 마음을 바꾸고, 그 마음이 다시 또 다른 생명을 향해 흘러간다.
이것이 화엄이 말하는 ‘인연의 그물(因陀羅網)’이며, 하나의 물방울 속에 온 우주가 비치는 까닭이다.
병이 드는 것도 인연이다.
회복하는 것도 인연이다.
삶이 고통과 평화를 오가듯, 인연은 빛과 그림자를 함께 품는다.
병원에 가는 일조차도 나의 선택이라기보다,
몸과 마음과 세상의 인연이 만들어낸 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나는 병원에 가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병원에 가는가.
이 질문은 삶의 목적과 수단을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그 혼란 속에서 오히려 깊은 자각이 깨어난다.
우리는 흔히 “살기 위해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순환을 모르는 말이다.
삶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며, 그 목적은 결국 죽음 속에서 완성된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의미를 잃는다.
불교는 생사(生死)를 둘로 보지 않는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잎이 진다.
피는 것이 곧 지는 것이고, 지는 것이 곧 피어남이다.
하나의 생이 끝날 때, 또 다른 생이 싹튼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그 완성이다.
화엄의 눈으로 보면,
삶은 고립된 개인의 사건이 아니다.
무수한 인연이 엮어낸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림 속의 한 점이 사라져도, 전체는 여전히 완전하다.
그 점이 있었기에 다른 색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인연의 세계는 이처럼 서로를 비추며 존재한다.
나의 고통은 타인의 깨달음이 되고, 타인의 눈물은 나의 자비로 이어진다.
삶의 목적을 묻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삶의 목적은 따로 있지 않다.
살아 있음 그 자체가 목적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음’은 이미 인연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나를 살게 하고, 땅이 나를 먹게 하며, 수많은 인연이 나를 존재하게 했다.
그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이며, 깨달음이다.
삶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산을 보아야 한다.
산은 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품는다.
봄에 피운 꽃을 탓하지 않고,
가을에 떨어지는 잎을 붙잡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또 내보낸다.
지리산이 그랬듯, 화엄의 가르침도 그러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 뜻이 아닌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뜻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작은 뜻이 모여, 결국 하나의 법(法)이 된다.
사랑을 하는 것도,
이별을 겪는 것도,
병원에 가는 것도,
마지막 죽는 것도.
모두 인연의 작용이며 깨달음의 과정이다.
나는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죽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인연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인연을 사랑하며, 받아들이며, 흘러간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 뜻이 아니었음을 깨닫고도,
그 삶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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