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칼럼] 한동훈의 공천 방식이 맘에 드냐는 질문을 받고
[섬진강 칼럼] 한동훈의 공천 방식이 맘에 드냐는 질문을 받고
  • 박혜범 논설위원
  • 승인 2024.02.15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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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구례읍 오거리 카페 허밍의 입간판이다.

[미디어한국]“한동훈의 공천 방식이 맘에 드십니까?”

“글쎄 뭐 100%는 아니지만, 이재명에 비하고 클린스만에 비하면 훨씬 더 낫고 잘한다는 정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초년병치고는 나름 지혜롭다는 건 사실이다.”

“민주당 이재명보다 잘한다는 건 알아듣겠는데, 축구 감독 클린스만보다 낫다는 거는 좀? 그리고 뭐가 지혜롭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다른 하나를 빼서 다른 하나를 더하면 0이 되는 것이, 산술의 법칙이고, 만일 다른 수가 나온다면 그건 반칙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충돌이라 서로 부딪쳐 무용한 수(쓸모없는 수) 즉 오답이 될 뿐이다.”

그런데 이 불변의 법칙을 벗어나는 희한한 묘수가 이쪽에서 뺀 하나를 저쪽에다 놓고 이쪽과 저쪽 둘을 동시에 얻는 것인데, 하나를 빼서 하나를 더한 자리에 0이 아닌 2가 저절로 나오게 하는 것이, 한동훈의 공천 방식이므로, 그것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설명하면 이재명은 하나를 더하여 둘을 잃어버리는 망하는 공천인데, 반대로 한동훈은 하나를 빼기로 둘을 만드는 공천 그것도 둘을 동시에 얻는 흥하는 공천이다.

“클린스만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대문 우측에 있는 튼실한 담에서 뺀 한 개의 돌을 가져다 좌측의 부실한 담을 보강하는 돌로 놓아 집을 지키는 것이, 한동훈의 공천이기에 하는 말이다.”

“덧붙이면, 재주가 많으면 덕이 부족하다는 재승박덕(才勝薄德)과 천재는 쓸모가 없다는 천재불용(天才不用)이라는, 예로부터 전하는 말의 의미를 뒤집어 보면, 덕이 부족한 재주가 많은 사람과 쓸데없는 천재 이 둘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여, 스스로 가진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사람이 훌륭한 스승이고 성공하는 지도자의 덕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온 나라가 놀라며 이강인이라는 혈기 왕성한 젊은 애 하나를 두고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는데, (두둔할 생각은 없다) 이강인이라는 재주꾼과 손흥민이라는 노력하는 천재, 이 두 사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지도부의 무능과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책임이 전제되지 않는 대책은 의미가 없고, 한국 축구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백년하청이기에, 축구 감독 클린스만은 그만큼 무능하고 반드시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

(정작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은,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보고 있으면서도, 통제하지도 못하고 깔끔하게 정리하여 자신의 계약 조건인 우승이라는 목적 달성에 실패한 클린스만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인성과 자질이고, 대표팀 내분은 물론 국제적인 망신을 초래한 클린스만은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결론은 한동훈이 잘한다는 말씀인데 그러면 됐지, 뭐가 아쉽다는 겁니까?”

“몇 가지 있지만, 가장 시급하고 고질적인 부정부패의 근원이며 썩어빠진 정치판을 물갈이하는 당면한 문제 가운데 대표적인 하나 즉 체계적이고 누구나 알기 쉬운 후보자 공천 시스템을 만드는 것으로, 이유가 무엇이든 한 번 낙선한 사람에게 벌칙으로 10%를 가하고, 두 번 낙선한 사람에게 20%를 세 번 낙선한 사람은 아웃 시켜야 하고, 그리고 한 번 당선되었다가 투표에 의해 낙선한 사람 역시 강력한 벌칙을 (최소 30%) 적용하여, 쉼 없이 흘러가며 정화하는 강물 같은 규칙이 없다는 것이 내 아쉬움이다.”

위의 글은 한동훈의 공천 방식을 불신하는 지인의 물음에, 내가 한 답변을 간추린 것이다.

다음은 구례읍 오거리에 소재한 카페 허밍 입간판에 써놓은 단문이다. (사진 참조)

가장 큰 위로는….
한마디 말보다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하여
시간을 내어 주는 것,

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진 임금이라는 성군(聖君)도 흉내는 낼 수 있어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 딱 하나 이 우주에서 저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법당 상단에 앉아있는 불상(佛像)뿐이기에, 저건 누구의 명언이냐고 카페 주인에게 물었더니, 그냥 자기의 생각을 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이 사람이야말로 대단한 사고력을 지닌 것으로, 흔히 말하는 (좋은 의미에서) 길거리에 숨은 도인(道人) 철학자라는 생각이다.

오늘 내가 구례읍 오거리 길가에 내걸린 입간판 하나를, 글의 주제로 세우는 것은, 여야는 물론 제3당의 공천 과정들을 보면, 가당치도 않은 자신들의 이야기만 듣기를 강요하고 있을 뿐, 온 나라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정치문화, 조금이라도 더 청렴한 사람들이 국민과 함께 미래로 나가는 발전적인 정치, 즉 민심이 외치는 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들으려는 시늉도 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여야 정치이고 후보 공천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지지하는 사람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천박한 노비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동벌이(黨同伐異)들이라, 즉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사람끼리는 한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척하고 막무가내로 증오하며 저주하는 저질들이라서, 4월 10일의 투표에 대하여 특별하게 기대할 것은 없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국민은, 즉 흔히 말하는 우리 같은 중도파들은, 시대와 민생들의 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정당과 후보들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진다는 것이고, 이 중도파들의 투표가 여야 승패를 가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뉴스나 여야 스피커들이 나불거리는 방송을 보지 않고, 트로트 경연인 현역가왕 재방송을 보고 있는데, 비단 봉성산 촌부인 나 혼자뿐이겠는가?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한동훈과 김경율 둘만이라도 깨닫는다면 봄날의 화전놀이는 국민과 함께 즐거울 것임을 나는 믿는다. 부디 그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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