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칼럼] 겨울비 내리는 밤 막걸리에 취해서 쓰는 글
[섬진강 칼럼] 겨울비 내리는 밤 막걸리에 취해서 쓰는 글
  • 박혜범 논설위원
  • 승인 2023.12.15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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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한국] 해마다 이맘때 김장철이면, 맛이나 보라며 이것저것 김치들을 싸서 막걸리와 함께 보내주시는 이가 올해도 보내왔다.

멀리서 잊지 않고 생각해 주시는 그 마음과 정성에 감읍하는 한편으로 나의 복이고 생의 즐거움이기에, 해마다 이맘때 김치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막걸리를 마시며 나름의 호사를 누려본다.

별것 아닌 김치 한 포기 가지고 유난을 떤다고들 하겠지만, 나에게 이 김치가 특별한 것은, 멀리서 보내주시는 그 마음과 정성도 중요하지만, 설탕 한 톨 넣지 않고 화학조미료 한 톨 첨가하지 않은 자연 재료 그대로 담근 최고 최상의 맛을 지닌 김치라는 사실이다.

그냥 글로 쓰는 썰이 아니다. 본시 음식의 맛이라는 것이 개인의 기호라 어느 것이 더 좋다는 평가가 불가한 것이지만, 이건 과장된 허풍이 아니다. 한마디로 쥑인다. 내 방식으로 최상의 표현을 한다면, 막걸리를 절로 부르는 맛이다.

엊그제 오전 일찍 구례우체국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택배를 찾아와 정리를 끝내놓고, 제일 먼저 한 일이 향기로운 김치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는 일이었고,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리는 탓에, 겨울비를 핑계로 막걸리를 사다가 마시고 있는데, 여전히 최상의 별미이고, 살짝 돋는 취흥에 나는 봉산의 신선이 되었다.

게재한 사진의 김치는 내가 해마다 이맘때 단 한 번 즐기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최상의 별미 김치다. 

세상사 어떻다고 호들갑 떨 것 없다. 인생이라는 거 세 살에 죽으나 아흔에 죽으나 한평생일 뿐이고, 너나 나나 잘난 체 해봤자 거기서 거기 별것 없다면서, 살아보라고 살아보면 한바탕 꿈임을 안다는 옛 노인들의 취중 진담이, 내가 늙어서 취해 보니 새삼스럽기만 하다.

세상이라는 거, 인생이라는 거, 사람들 저마다 바락바락 악을 써대 보지만, 아서라 모두가 제 꿈에 빠져 헤매다 그 꿈을 깨고 가는 꿈속의 나그네일 뿐….

꿈은 흔적이 없다.
누구나 꿈은 꾸지만 깨고 보면 꿈은 흔적이 없다. 
꿈속에 무슨 흔적이 있을 것인가.

나고 죽는 생사가 한바탕 꿈속의 일들이고
우리네 인생이 또한 한바탕 꿈속의 일들이다.

사람들 저마다 간밤의 꿈속에서 별의별 일들을 겪지만, 그 꿈을 믿고 헤매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왜냐하면 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꿈을 꾼다. 꿈을 깨는 그 순간까지 아등바등 죽을 둥 살 둥 꿈을 꾼다. 세상 어딘지 모를 곳에서, 생이라는 부질없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지금 바로 지금 이 글을 읽은 모든 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기를 나는 기도한다.

봉산(鳳山) 문(門)이 없는 門 허허당(虛虛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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