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한국 박혜범 논설위원] 요즈음 아침마다 걷기를 하면서, 나훈아의 신곡을 깊은 호흡으로 듣고 있는데, 지인이 그런 나를 보고 허허당(虛虛堂)의 허생(虛生)도 그런 노래를 듣느냐며, 나훈아가 신곡 “삶”의 결론으로 내린 허무(虛無)를 어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내가 작사 작곡한 나훈아 당사자가 아니어서 알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본인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라, 내 나름 뭐라고 결론을 내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다만 내 느낌과 공감하는 바를 말한다면, “삶이란 인생이란 마당에서”로 시작해서 “삶이란 그저 허무일세”로 끝나는 노래 나훈아의 신곡 <삶>은 깨달음의 노래라는 것이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에서 인연으로 생겨나 잠시 살다가는, 사람이라는 우리네 인생의 실체를 해부하여 보면, 몸은 마음을 의지하고, 마음은 몸을 의지하여 생겨난 것이 사람이고, 이 사람이 사는 인생이 삶이다.
이것을 고차원적으로 해석하면,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몸과 마음 자체가 무상(無常하여 그 실체가 없는 것으로, 즉 몸도 실체가 없는 허(虛)이고, 마음도 실체가 없는 허(虛)이니, 몸과 마음 이 둘이 함께 의지하며, 사람이라는 허울을 쓰고 잠시 살다가는 인생이라는 삶 역시 실체가 없는 허(虛)다.
여기서 말하는 허무(虛無)가 흔히 말하는 무의미한 것으로 헛되고 허망하다는 한탄이냐, 아니면 삶의 본질을 깨우치는 것으로, 즉 불교의 진공묘유(眞空妙有)냐는 것이다.
나야말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혹 그렇다고 하여도 가수 나훈아가 살아온 인생과 이번에 발표한 “새벽”에 실린 삶의 아픔과 위로의 노래들을 통해서 내가 느끼는 것은, 나훈아야말로 저잣거리에서 법을 전하여 사람들을 깨우치고 있는 것으로, 존경할 성자가 한 명도 없는 우리 시대의 성자(聖者)라는 것이다. 노래하는 성자이고 철학자라는 말이다.
나이 76세의 나훈아가 앨범 “새벽”에 발표한 신곡 “삶”의 결론으로 내린 허무(虛無)에 대하여 나름 분석하여 보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염세주의(厭世主義)는 아니다. 그렇다고 도가(道家)의 허무(虛無)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하고, 불교의 진리인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나훈아 방식으로 풀어낸 거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1, 몸도 실체가 없는 虛이고 2, 마음도 실체가 없는 虛이고 3, 인생이라는 삶도 실체가 없는 虛이고, 이들 셋 모두가 실체가 없는 虛이며, 인생이라는 실체가 없는 삶, 그 속에서 벌어졌던 가슴 뜨겁던 사랑도 실체가 없는 虛이고, 헤어지면 못 살 것 같던 슬픈 이별도 실체가 없는 虛라는 것을 깨달은 나훈아가, 텅텅 빈 허공(虛空) 쉼 없는 하늘에서 한바탕 일었다 사라지는 바람과 구름처럼, 인생도 그런 거니, 그렇게 살다 가자고, 아니 그렇게 살다 가라고, 가수 나훈아가 세상에 불러주는 진리의 노래이며 참 좋은 선물이다
문(門)이 없는 문 허허당(虛虛堂)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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