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칼럼]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상기시키는 2급 장애인이 벌인 끔찍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섬진강칼럼]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상기시키는 2급 장애인이 벌인 끔찍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 박혜범 논설위원
  • 승인 2023.01.23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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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인연을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순리의 강 섬진강 물안개다.
사진 설명, 인연을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순리의 강 섬진강 물안개다.

[미디어한국 박혜범 논설위원] 병신이 벼슬도 아닌데 병신이 위세를 부린다.
(누가) 병신이 아니랄까봐 병신이 병신 짓을 한다.

병신을 주제로 한 위 글은 촌부가 전라도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1960년대를 초등학생으로 살면서, 일상으로 듣고 보았던 것으로, 마을 어른들이 이따금 혀를 차며 하던 안타까움과 지탄의 말이다.

1960년대 당시에는 6.25 전쟁이라는 참혹한 동족상잔으로 인한 탓도 있었지만, 마을마다에는 선천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안고 태어났거나, 또는 후천적으로 태어나 살면서 각종 불행한 사고로 불구가 된 사람들이 몇 명씩 있었는데.....

이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육체적 불구가 된 사람들의 삶을 보면, 어떤 사람은 불구인 자신의 실체와 실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혜롭게 극복하며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반면, 특히 이른바 성치 않는 몸, 병신으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과 원망으로 지내며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과 친인척들은 물론, 이웃과 마을 사람들에게 벌인 온갖 억지와 행패가 어떠하였고, 그들이 시도 때도 없이 툭하면 발광하듯 시비와 행패를 벌일 때마다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언제부터인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약칭 전장연 사람들이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4호선을 점거하여 벌이고 있는 시위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저래도 되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누가 장애인들을 차별한다는 것인지, 또는 그렇게 해서 집행부가 목적하는 정치적인 퍼포먼스는 성공한다 하여도, 지켜보고 있는 전체 국민들이 갖는 인식에 대하여, 특히 4호선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이 갖는 불안감과 고통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정작 장애인 차별은 장애인 자신들이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정부와 서울시다. 특히 대규모 참사를 불러 올 수도 있는 서울 시민들이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을 볼모로 불법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장애연의 일탈을 묵인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태도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기억해야 할 것은, 2003년 2월18일 오전 대구지하철 1호선 (1079호) 중앙로역에서, 세상에 불만을 가진 2급 장애인 김 아무개가 전동차 바닥에다 인화물질을 쏟아 부은 뒤 불을 붙여 화재가 발생, 사망자 192명, 부상자 148명 등 34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사건이다.

촌부가 사회에 불만을 가진 장애인이 벌인 그 끔찍한 참사인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은, 제아무리 장애인들이라 하여도,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불특정 사람들이 이용하고 붐비는 지하철을 점거하여 무고한 시민들을 인질로 시위를 하는 짓은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는 극히 위험하고 악의적인 범죄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느 단체든 또는 그 어떤 누구를 막론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보장하는 지하철과 버스 등등을 점거하여, 시민들을 인질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행위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면, 범죄의 차원이 아닌 악랄한 테러로 인식하고 가차 없이 진압하는 것은 물론, 그 주동자들은 끝까지 엄벌하여, 보편적인 시민들 누구나 가지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인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지키고 보장해야 하는 것이 정부와 서울시장의 책무이며 문명사회의 법이며 상식이라는 말이다.

부연하면 불특정 시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이나 버스 등이 아닌, 서울시청 앞이나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또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하는 시위는 얼마든지 좋다는 것이 촌부의 생각이며, 그런 합리적인 주장과 시위라면 언제고 적극 지지한다.

돌이켜보면,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던 비포장 신작로가 깔끔한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고, 자동차들이 거리에 넘치고, 처음 길을 건너는 다리 육교를 만들 때, 장애인들이 지금처럼 흔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시대를 어느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마찬가지로 지하철을 처음 건설할 때 역시 지금처럼 장애인들을 위한 전동차가 길거리에 넘쳐나는 시대가 올 것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고 생각할 수도 없었으며, 그런 시대적 사고와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지금의 지하철구조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발전과 인식을 통해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국가와 사회발전이라는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서, 전장연이 요구하지 않아도 개선되고 변화될 것이라는 사실인데, 이걸 당장 하루아침에 개조하여 바꾸라고, 무고한 출근길 시민들을 인질로 붙잡으며 요구하고 있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아침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시민들을 인질로 불법적이고 악의적인 억지와 행패를 벌이고 있는 장애연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지하철 4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장애연을 향하여 한마디 항의라도 했다가, 이른바 좌표를 찍혀 직장과 사회에서 매장을 당하는 피해를 볼까 두려워서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분노와 원망이며, 더 나가 서울의 지하철과는 전혀 무관한 전라도 섬진강과 지리산 산골사람들까지 직접적인 문제가 되고 있으며, 그 폐해의 파장이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4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시민들) 아들 부부가, 전장연이 시도 때도 없이 벌이는 지하철 점거와 시위로 인하여, 평화롭던 출근길이 고통과 스트레스가 되고, 마침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 직장과 가정을 오가는 일상이 엉망이 돼버렸으며, 무엇보다도 임신한 며느리가 불안하여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탓에, 더는 4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것이 불가하여, 집을 4호선이 아닌 다른 노선으로 옮기려 하는데 익히 알다시피 고금리 탓에 대출을 받기도 어려워서, 구례읍에 사는 부모의 전답을 팔아 보태야 한다는 현실이, 여기 지리산 산골만이 아니라는 것이며, 서두에 언급한 60년대의 이야기 “병신들이 병신이 아니랄까봐 병신 짓들을 한다.”는 분노와 비난을 전국적으로 야기하면서,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로 하여금, 전장연 자신들의 행위를 장애인 즉 병신들이 하는 병신 짓거리로 폄훼 각인시키면서, 스스로를 몸과 마음까지 병든 병신들 즉 단호히 엄단해야 할 사회악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그 원인이 무엇이든 스스로의 장애를 지혜롭게 극복하며 열심히 노력하는 장애인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병신이라고 다 병신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불구자인 또래의 아이들은 물론 몸이 불편한 병신이라고 하는 육체적 장애를 가진 불구자들을 놀리는, 철없는 마을 아이들을 불러다 꿇어 앉혀놓고 혼쭐을 내면서, 장애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였던 마을 어른들의 가르침인데, 오늘 “병신이라고 다 병신이 아니다.”는 이 한마디를 여기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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