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초대전

[미디어한국 조승희 기자] 1939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김배히 화백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입선을 계기로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교직에 몸담아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목우회’와 ‘신작전’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충청권 화단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정년 후에도 대전과 공주를 기반으로 꾸준히 창작에 몰두하며 지역 미술계의 든든한 뿌리로 자리했다.

“그림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나만의 형식을 더 다듬으며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고 싶습니다.”  86세 김배히 화백의 말은 담담하면서도 깊다.  60년 넘는 시간 동안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조용히,  묵묵히 인간과 삶,  기억과 감정을 화폭 위에 새겨왔다.

그 오랜 여정을 담은 회고전이 오는 7월 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회장 박복신) 1층 그랜드관에서 열린다. ‘김배히 화업 60’이라는 제목 아래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작품 전시를 넘어 한 예술가의 시간을 따라가는 특별한 기회다.

이번 회고전은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조망하며 각 시기별 화풍의 변화를 통해 작가의 조형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되짚는다. 1960~70년대에는 국전풍의 사실주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단정한 구도와 정적인 인물 묘사는 당시 시대 감성과 회화 교육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는 거칠고 감정적인 붓질과 강렬한 색채 대비가 돋보이는 야수파적 화풍으로 전환된다. 거칠지만 생생한 화면은 그 자체로 깊은 에너지를 품고 있다.

2000년대부터는 인상주의적 시각과 야수파의 대담함이 결합된 독자적 형식이 자리 잡는다. 전경과 원경을 하나의 화면에 통합하려는 실험적 시도와 더불어, 사실성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들이 이어졌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더욱 간결해지면서도 조형적 긴장감을 잃지 않았고, 김배히 화백만의 회화 언어가 정제되어 갔다.

최근에는 인체 드로잉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는 실험에 집중하고 있다. 인물의 윤곽만을 남기고 이목구비는 생략한 채 간결한 선으로 표현한 화면은 전통적인 드로잉도, 완전한 회화도 아닌 독자적인 회화 형식을 보여준다. 이는 사실성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구축해온 김배히 화백 특유의 조형 언어를 잘 드러낸다.

미술평론가 신항섭은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야수파적 표현을 아우르며 끊임없이 조형 언어를 갱신해왔다”며  “인간과 자연, 삶의 흔적을 담아낸 그의 화폭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서정적 추상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김배히 화백은 “2020년 이후 인연을 맺은 인물들의 기억과 감정, 공간의 흔적을 담고자 한다”며  “사실적 묘사가 아닌 형을 단순한 선으로 재구성하고, 절제된 색을 사용함으로써 담백한 이미지를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장에는 이같은 드로잉 시리즈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을 주제로 한 다양한 회화들도 함께 선보인다. 숲속에 앉은 노부인의 평온한 자태, 주홍과 초록이 강렬하게 맞부딪히는 여성의 초상,  노동자의 일상을 담은 삼중 구도의 인물화까지,  모두가 김배히 화백이 평생 탐구해온 인간 존재의 깊이에 닿아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사라져가는 감정과 기억,  존재의 결을 붙잡는 일일지 모른다.  김배히 화백의 60년 화업은 거창한 기술적 발전보다는 묵묵한 시선의 지속성에 있다.  이번 전시는 삶을 예술로 바꾸어낸 한 사람의 손끝을 따라가며,  조용한 헌신과 정제된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여정이 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접한 김배히 화백의 작품들은 깊은 감동과 평안을 주었다.  따뜻하면서도 선명한 색감,  그리고 화백의 세월과 마음이 담긴 화면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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