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장에 가신 날
아버지가 장에 가신 날

[미디어한국] 제3회 서울시민문학등단작품이다. 수필부문으로 "아버지가 장에 가신 날" 을 선정했다.

●심사평
인간의 삶의 기본인 의식주에서 아버지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 연민 봉사의 일생에 있어서 자식의 목구멍에 넘어가는 음식이다.

저자는 한 편의 수필에서 아버지의 장바구니는 혼돈의 삭막한 콘크리트 도시에서 삶의 판소리에 한 모금 수필로 승화하는 인간성의 노랫가락의 풀잎 잔치다.

아버지가 장에 가신 날

풀피리. 아버지. 시장. 장바구니. 옷자락. 으흠. 알사탕. 새 신. 대청마루. 아코디언. 하모니카. 피리. 술상. 막걸리. 깍두기. 노래. 박자. 달빛. 음대.

얼~쑤. 참인간 참인생 참삶의 정다운 수필을 감상했다.
최불암 선생의 "전원일기" 드라마 인생의 희로애락의 가락들이 한판 수필로 춤을 추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천국이다.

●아버지 장에 가신 날-오선 이민숙

동구 밖 어귀 돌아 노을이 내릴 때쯤
길섶 풀밭에 앉아 풀피리 불며
장에 가신 아버지를 기다린다

흰색 저고리를 입으신 아버지는
옷자락을 펄럭이며 ''으흠'' 하시고
성큼성큼 마을 길을 들어 서면

잰걸음으로 쪼르륵 뛰어가서
아버지의 장바구니를
나누어 들겠다고 떼를 쓰면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한 봉지 꺼내서 내 손에 쥐여 주신다
신이 나서 끙끙대고 집으로 들어서면
백구도 뛰어나와 킁킁킁 꼬리를 친다

아버지의 시장 망태기를
대청마루에 마구 펼치고
이리저리 뒤져서 알사탕 하나 입에 넣고
볼이 빵빵해져서는
아버지가 사 오신 새 신을 신고

작은 마당 꽃밭을 뱅글뱅글 돌면서
입안의 사탕이 다 녹을 때까지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그날 밤 별빛이 쏟아지는 들마루에
막걸리 한 주전자 깍두기 두세 조각
단아한 술상을 마주하시고
얼큰하게 술이 오르신 아버지는
언니 오빠 우리들을 불러내신다

모깃불 집힌 평상에는
아버지가 시장에서 사 오신
선물 꾸러미를 끌어안고
아버지가 시키는 노래를
군소리 없이 곧잘 불러댄다

아버지는 아코디언 오빠는 하모니카
어느새 언니는 피리를 손에 잡았고
나는 실로폰으로 장단을 맞춘다

한참 흥이 오르면
결국은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술상을 드럼처럼 이리저리 때리면

박자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제멋대로 장단에 별님은 기가 차서 웃고 달님은 할 말을 잊었는지 정수리에 찰박하게 달빛만 퍼붓는다

그런 밤이면 반딧불 아가씨들
어디서 왔는지 떼로 몰려와
희한하게 노랫가락에 맞춰
알아서 리듬을 타며 제멋대로 춤을 춘다

한참 동안 달콤한 여름밤이 익어가면
엄마는 흰 감자를 소쿠리에 담아 들고 우리들의 허기를 또 채워주신다

한 여름밤에 수놓던 악기 놀이는
어긋났던 박자와 실랑이 하던
유년의 추억이 무성하게 자라서
훗날 내가 음대를 가겠다고 결심한
첫 단추였을까

아버지의 장바구니는
어쩌면 내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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