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서 시인
박관서 시인

[포토 신경미 문화예술위원] 박관서 시인은 철도청 역무원으로 34년 동안 몸담아 왔다. 정든 철도청을 퇴직한 후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에 이어 서울에서 2년간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직무를 마치고 다시 전남 무안에 귀향한 박관서 시인.

박 시인은 사춘기 시절, 시를 좋아하였으며  1983년부터 기적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박 시인은 "34년 철도와 함께 해온 역무원 생활은 내 문학의 모태이자 자양분입니다" 라고 말했다.

거시적, 미시적 세상의 탐구에서 표출하는 天心의 언어적 표현이 철도의 기적소리에서 나온다.

현재 무안학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마을조사와 인물탐구 등 지역학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객지생활 하느라 미뤄두었던 호남선 철도에 관한 서사시 집필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또 박 시인은 "무안을 떠나 7년 동안 광주 찍고 서울까지 제가 사는 세상 밖의 세상 구경을 잘하고 왔습니다." 라고 했다.

그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96년 《삶 사회그리고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시집《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 《광주의 푸가》, 산문집 《남도문학을 읽는 마음》등을 간행하였다.

'볼펜 심지를 밀어 선로점검부 칸칸이 이상 무 동그라미를 그리며 완행열차 지정선인 5번선을 걷다보면'(시 <5번선>) 하얀 기적소리에 실린 세상이 가슴으로 안긴다. 그처럼 힘든 오늘의 현실을 과거와 미래로 이어 안고 걸어오고 있는 그의 시는  고난꽃이라 이름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에게는 박꽂미소로 다가온다.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 등 그의 주옥같은 시를 접하다보면 그리스 시인 마노스 엘레프테리우가 실제 이야기를 시로 쓴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떠오른다. 또 여기에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멜로디를 붙여 세계적인 명곡으로 탄생했듯이, 박관서 시인은 서정적인 은유법으로 주로 시를 써서 조형적 언어의 느낌까지 느껴지는 시인이다.

그의 詩心을 보자.
'당신과 싸우지 않겠다// 언덕을 넘어 함께 거닐던 저녁 바람이/ 아무리 앙칼지게 불어와도// 푸른잎새 노란 어금니를 앙다물고/ 당신이 등오하는 당신은 되지 않겠다// 당신의 그림자로 당신을 덮지는 않겠다// 길이 갈리면 고요히 손을 흔들며/ 길에 깔린 기억을 일으켜 세워// 지친 당신을 감싸 보련다 멀리 있어/ 가득 차오른 달빛을 보며 둥실// 허리를 꺾어 휘파람을 불어보련다.(시 <달맞이꽃> 전문)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한겨울 설산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인생이 떠올라 앞에서와 같이 '고난꽃'이라 명명하고 싶다. 쌉싸름하면서도 달큰한 칡같은 어머니의 삶과 같은 결을 보이면서 평소 흰 고무신을 즐겨신고 있는 박시인의 모습에서 박꽃처럼 활짝 웃는 소박함을 본다. 얼핏 평번한 시행속에서 농밀한 삶을 깨닳게 해주는 그의 시를 읽노라면 풍요로운 가족애가 느껴져서 마음까지 다 따뜻해진다

박관서 시인 대표시 한편을 낭송해본다.

●가거도行

 밀려난 꿈은 가장자리가 가장 깊다

사는 일에 목을 걸고 맴을 돌다

국토의 맨 끝 가거도에 이르러

이웃나라 닭 울음에 귀기울이고 있는

녹섬 앞 둥구횟집 평상에 앉아

검정 보리술로 목을 헹구면

박혀 있던 낚시미늘마저 따뜻해진다

밤 깊은 동개해변 찰랑거리는

둥근 달빛에 젖어 흠뻑

사는 일 흔적도 없이 지워져

남의 나라 남의 일이 된 즈음에야

새로워진 나를 만난다 스스로 깊어진

가장자리를 만난다 생무릎 꺾여

밀려나 보지 않은 이들은 평생을 살아도

가거도에는 이르지 못하리.

신경미 문화예술위원
신경미 문화예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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