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칼럼] 전두환 33년 전 11월 23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섬진강칼럼] 전두환 33년 전 11월 23일이 바로 오늘이었다
  • 박혜범 논설위원
  • 승인 2021.11.24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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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한국 박혜범 논설위원] 봄날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여름날에는 무성한 잎으로, 가을날에는 색색의 단풍으로, 그렇게 살았던 나뭇잎들이 뿌리로 돌아간 낙엽귀근(落葉歸根)의 초겨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병으로 죽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람이 나고 죽는 일은, 인연을 따라 왔다가 인연을 따라서 가는 것이지만, 어리석은 범부는 인연을 알지 못하고, 또한 스스로 자신의 생사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인데, 33년 전 1988년 11월 23일 백담사로 귀양살이를 갔던 바로 그날, 오늘 2021년 11월 23일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돌아간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면, 오고가는 이승의 인연이 기이하기만 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가 사망이라는 긴급 속보로 뜨자마자, 이미 죽은 사람을 두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분분하기만 하다.

사람들 저마다 이미 죽어 고인이 돼버린 사람 전두환과 그의 죽음을 두고, 호칭을 전두환씨라 하고, 전직 대통령이라 하고, 사망이라 하고, 서거라 하고, 죽었다 하는데, 이런들 저런들 다 부질없는 말장난이고 쓸데없는 짓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일들을 보면, 사람과 시대, 시대와 사람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시대는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자신이 살 수 밖에 없는 시대를 사는 것으로, 그가 누구이든(전 현직 대통령이든 길거리 노숙자든 재벌 회장이든 아리따운 미인이든) 영예(榮譽)와 치욕(恥辱)이라는 삶 자체가 다 시대의 부산물이고 자신의 허물일 뿐, 자신이 살 수 밖에 없는 생을 살다가는 것뿐이다.

사람이 죽어서 보면, 삶은 찰나의 순간이고, 영예도 치욕도 다 부질없는 허물이라는 것을 안다면, 촌부의 말을 이해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마다 판단과 평가가 다르겠지만, 김대중은 김대중이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을 김대중답게 살다 김대중답게 죽었고, 노무현 역시 노무현이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을 노무현답게 살다가 노무현답게 죽었고, 전두환 또한 자신이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전두환답게 살다 전두환답게 죽은 것일 뿐......

죽은 그들의 삶이 옳았다 글렀다 하는 판단과 평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는 호불호(好不好)에 따라 벌이는 부질없는 다툼일 뿐이다.

마치 산 무당들이 죽은 자들의 이름에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초상화를 그려 이런저런 혼령이라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홀려서 먹고사는 것처럼,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죽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생전에 자신의 병을 인지하고, 살만큼 살았다며 적극적인 치료를 거부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역시 전두환답다는 생각이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33년 전 1988년 11월 23일 그날 살아서 연희동 집을 떠나면서 느꼈던 그 겨울바람과, 33년 후 2021년 11월 23일 오늘, 죽어서 연희동 집을 떠나면서 느끼는 겨울바람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스스로 생을 연명하지 않고 이승을 떠나는 고인에게, 한마디 묻고 싶은데, 죽은 고인은 말이 없으니, 막연히 나 혼자 생각을 할 뿐이다.

살아서 연희동 살던 집에서 쫓겨 가던 33년 전 1988년 11월 23일 그날은, 백담사 계곡보다 더 길고 꽁꽁 언 얼음보다 더 시린 원망과 울분이었지만, 33년 후 스스로 죽어 연희동 집을 떠나는 오늘 11월 23일은, 연희동 하늘에 이는 겨울바람처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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