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갈법] 유엔이 지적한 '언론법' 3가지 문제…자의적해석·자기검열·가짜뉴스
[재갈법] 유엔이 지적한 '언론법' 3가지 문제…자의적해석·자기검열·가짜뉴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9.02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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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보고관은 이 조항에 따른 당국의 자의적 판단 때문에 정부나 정치 지도자, 기타 공적 인물 등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가 '징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

[미디어한국] 우리 정치권과 언론계의 '뜨거운 감자'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 문제가 국제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제언론단체와 주요 외신들에 이어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마저 공개적으로 이 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다.

이레네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리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일부 내용이 국제인권규약 중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정부에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칸 보고관은 특히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이 법 개정안의 '수정'을 권고하면서 "우리 정부가 기술적 지원을 요청할 경우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OHCHR 측이 사실상 이 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한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2개월 넘게 이 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침묵'을 지켜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뒤늦게 "언론 자유와 피해자 보호가 모두 중요하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회적 소통과 열린 협의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도 이번 '유엔발(發)'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칸 보고관은 이번 서한에서 그간 국내외 언론 등에서 제기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의2에 규정된 '허위 조작보도에 대한 특칙'(고의 중과실 추정 조항)에 대해 "매우 모호한 용어"로 돼 있다며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중국 프레스센터 내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열린 언론현업5단체의 ‘’밀실에서 광장으로‘ 언론중재법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독립 기구 제안’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2021.9.1

'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은 '법원은 언론 등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칸 보고관은 이 조항에 따른 당국의 자의적 판단 때문에 정부나 정치 지도자, 기타 공적 인물 등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가 '징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칸은 또 해당 조항이 허위·조작보도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 액수를 '손해액의 5배'로 정한 데 대해서도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가뜩이나 법 규정 자체가 모호한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액수마저 과도해 이를 피하기 위한 언론의 '자기 검열'이 강화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단 얘기다.

특히 그는 내년 3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질 예정인 점 등을 들어 이 조항이 "언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거듭 우려를 표시했다. 대통령후보자들에 대한 '검증' 보도가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그는 이 조항 때문에 Δ사회적 약자 등 소수 의견이 언론보도에서 밀려나고 Δ공익적 목적의 토론도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때문에 언론인들이 취재원 노출을 강요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칸 보고관은 이 같은 우려 때문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ICCPR 제19조가 정한 법률의 '필요성' 및 '비례성'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31일 언론중재법 협의체 구성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1.8.31

이외에도 칸 보고관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취지 자체 또한 국제인권규약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국제인권법에선 근거가 빈약한 주장(가짜뉴스)마저도 표현의 자유 범주에 넣기 때문에 무조건 '올바른 정보만 전달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풍자나 패러디가 표현의 자유로서 인정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CCPR도 제19조3항에서 Δ타인의 권리·명예를 존중하거나 Δ국가안보·공공질서·공중보건 및 도덕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표현의 자유에 일정 제약을 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ICCPR 20조는 전쟁을 선전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할 수 있는 민족·인종·종교적 증오를 고취시키는 행위에 대해 법률로써 금지토록 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그러나 칸 보고관은 우리나라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이들 조항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ICCPR 19조의 '적법성'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칸 보고관은 이 같은 우려사항을 국회의원들과도 공유해줄 것을 우리 정부에 주문했다.

칸 보고관의 서한은 OHCHR 웹사이트에도 게시돼 있어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칸 보고관의 서한에 답신할 경우에도 48시간 이후에 그 전문이 웹사이트에 공개되며, 그 내용은 유엔인권이사회에도 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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