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학습 병행 날마다 보람…최고의 선택을 했어요
[경제] 일·학습 병행 날마다 보람…최고의 선택을 했어요
  • 이정우 기자
  • 승인 2016.08.2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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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은행에 입사한 후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 양재희 씨는 “일과 학습을 병행하며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한국//이정우기자)  8월 17일 서울 영등포구 우리은행 대림3동지점에서 만난 양재희(22) 씨는 “친구들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할 때 간혹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는데, 오히려 나는 입이 풀려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게 얘기한다”며 “이런 성향이 은행원으로 일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양 씨는 중학생이었을 때 학교 홍보차 방문한 특성화고인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재학생들을 통해 ‘선취업 후진학’ 제도를 접했다. 아직 하고 싶은 걸 발견하지 못했는데, 남들 따라 대학에 간다고 해서 자신의 앞날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차라리 일찍 사회에 진출해 일을 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보고 싶었다. 당시 서울여상의 취업률이 높은 것도 양 씨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일하면서 역량 키우려 ‘선취업 후진학’ 결심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취업 3년 만에 대학 진학


  그의 당찬 포부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상고를 나와 또래보다 사회를 일찍 경험한 양 씨의 부모가 크게 우려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일로 성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학력 제한에 따른 ‘유리천장(능력이 충분한데도 성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용어)’을 우려한 것이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저부터 스스로가 내린 결정에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몇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선 일을 하면서 나의 소질과 특기를 살펴보고, 학업을 병행해 부족한 것을 채우겠다고 결심했죠.”

  양 씨는 부모에게 “취업을 먼저 한 후 나중에 대학에 진학하겠다”며 3년의 경력을 가진 재직자는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입사 3년 동안 회사생활과 업무에 적응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일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것을 2차 목표로 세웠다. 앞날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 것일까. 부모는 딸의 결정을 지지했다.

  2010년 3월, 양 씨는 특성화고인 서울여상에 진학해 국제통상을 공부했다. 덕분에 수출입 관리, 전자무역실무, 물류 관리, 무역창업 실무뿐 아니라 금융 실무, 국제금융, 전산회계 등을 두루 익힐 수 있었다.

  금융과 무역을 공부하던 중 양 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제1 금융권인 ‘은행’이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면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과 자본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창구에서 다양한 고객을 만나며 세상살이를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듯했다.

  방향을 설정한 양 씨는 취업 준비에 돌입했다. 학교에서 매주 진행하는 은행 창구 실습수업에 적극 참여하고, 회계 자격증을 취득했다. 만반의 준비를 한 결과, 2012년11월 고졸 행원 2기로 우리은행에 입사했다. 첫번째 목표를 이룬 순간이었다.

  양 씨는 첫 근무지인 우리은행 영등포지점에서 2년 6개월간 근무한 후 올 초 대림3동지점으로 옮겼다. 그 사이 주임으로 승진했다. 창구에서 근무하는 양 씨는 신규 고객을 발굴하는 동시에 대출상담과 입출금, 예금, 신탁 해지, 전자금융 등 다양한 업무를 처리한다. 새 근무지는 조선족과 중국인 등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요즘 외국어 공부에 여념이 없다.

  당초 계획에 따라 3년간의 업무 적응기간을 둔 그는 올 3월, 홍익대 디자인경영학과에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디자인경영학과는 디자인과 경영이 융합된 학과로 인문교양을 함께 습득할 수 있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대학생… 하루하루 뿌듯 


고졸 사원에 대한 편견 깨고 다양성 존중하는 사회 됐으면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은행원과 학생이라는 두 개의 신분을 갖게 된 양 씨. 그의 삶은 어떨까. 오전 7시출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평일 중 3일은 오후 6시쯤 퇴근해 학교에서 오후 7시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을 듣고, 주말(토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연속으로 강의를 듣는다. 회사 측의 배려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수업만 듣는 게 아니다. 틈틈이 과제를 주고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한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지만, 양 씨는 올 1학기 성적 3점 후반대를 기록했다. 일과 학습을 병행한 첫 학기치고는 높은 점수다.

  “학창시절과 달리 지금 하는 공부는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 시작했기 때문에 학업을 끝까지 마쳐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했으니 학교생활에 소홀할 수 없고요. 일과 학습을 병행한 이후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는 점이 가장 뿌듯해요.”

  물론 어려움도 있다. 직장에서 강의실로 허겁지겁 달려오다 보면 하루 종일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하는 날이 많다. 대학생 신분을 얻었지만,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지 못하는 것도 양 씨로서는 아쉬운 점이다.

   특성화고 출신으로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자신을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시선도 불편하다. 양 씨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학력 차별을 해소하지 못한 것 같다”며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선취업 후진학’을 통해 일과 학습을 병행하며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캠퍼스에서 만난 동기들도 양씨에게는 소중하다.

  고졸 사원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모두 특성화고를 졸업했다. 상황이 비슷하다 보니 서로 자극을 받고 위로도 얻는다. 수업 분위기는 치열하다. 사회인이 모인 만큼 학점 관리는 물론 과제, 시험 준비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성장하기 위해 돕는다.

   이럴 때면 양 씨는 ‘선취업 후진학’을 선택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7학기를 휴학하지 않고 공부해서 예정대로 2020년에 졸업할 계획이에요. 재직자 특별전형은 한학기 등록금의 30%가 장학금으로 지급되는데, 휴학을 할 때마다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소멸돼요. 게다가 한번 공부를 멈추면 다시 시작하는 게 어렵잖아요. 기회가 왔을 때최선을 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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