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어게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오피니언] 어게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이정우 기자
  • 승인 2016.08.05 0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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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오경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핸드볼 금메달리스트)

  (미디어한국//이정우기자) 나의 어린 시절 꿈은 멋진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나는 조용한 성격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늘 주어진 일들을 잘한다고 칭찬받는 아이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핸드볼을 시작하면서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다.

  짧은 머리에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은 나의 일부가 됐다. 학교에서 운동을 마치고 저녁때 목욕탕에 가면 “남자가 어디를 들어오느냐”며 아주머니들이 비명을 질렀다. 검게 탄 피부에 여자와는 거리가 먼 모습은 누가 봐도 오해할 만했다.

  학창 시절 보이시한 나는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 수많은 선물과 팬레터를 받았다. 그런 성원에 부응이라도 하듯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꿈이자 목표이자 도전이 됐다.

  드디어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게 됐다. 그때는 철이 없어 태릉선수촌에만 들어가면 국제대회 금메달은 당연히 획득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태릉선수촌은 눈을 감는 것도, 눈을 뜨는 것도 두렵게 만드는 곳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잠들기 전까지 지옥훈련의 나날이 이어졌다.

  몸속의 땀 한 방울까지 짜내는 힘든 훈련은 몸과 마음을 매일 파김치로 만들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태릉선수촌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태릉선수촌은 아파서 쉬는 곳이 아니다”라는 감독님의 말씀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했다. 부상으로 아플 때면 더욱 훈련에 매달렸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누구나 ‘올림픽에 출전해 반드시 금메달을 획득하겠다’는 꿈을 키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든 훈련을 견디는 것은 올림픽 메달을 위해서였다. 1992년 드디어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리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된 노르웨이와의 첫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장 3층까지 가득 메운 관중의 함성이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의 팔꿈치에 눈 부위를 맞아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선수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최선을 다해 싸웠다. 마침내 영광의 금메달을 획득하게 됐다.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 올라 오랫동안 꿈꿔오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행복감은 그동안의 지옥훈련을 잊게 해주었고, 지옥훈련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절대 과정이었음을 그 순간 알았다. ‘폭풍우 없이는 무지개를 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경험이 20년 넘게 나를 올림픽 도전자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올림픽에 참가했고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각각 은메달을 차지했다.

  8월 6일(한국시간) 개막되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설렘과 긴장, 불안과 흥분 속에서 복잡한 마음이 교차할 것이다. 메달을 획득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할 것이다.

  누구나 참가할 수 없는 올림픽 무대는 정말 특별하다. 전 세계가 하나 되는 스포츠 축제이자 최고의 무대인 만큼 대한민국 선수들은 당당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국민들은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응원하고 그 모습에 감동받는다.

  4년 동안 국가대표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리우에서 경기를 펼치게 될 선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벌써부터 시선이 가는 이유다. 나는 1992년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함께할 것이다. 대한민국 선수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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