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왜곡된 토지질서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법률칼럼] 왜곡된 토지질서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 미디어한국
  • 승인 2018.07.1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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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법무법인(유) 산우 김남기 변호사
사진 : 법무법인(유) 산우 김남기 변호사

[법무법인(유) 산우 김남기 변호사]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 토지란 생산의 3요소 중 하나이자 투자의 대상으로서 재산증식의 주요 수단으로 여겨진다. 토지에 대한 대중적 욕구가 용인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동양에서 토지는 본래 왕의 소유였으며, 서양에서 시민들의 토지소유권은 시민혁명으로 근대 법질서가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인정되었다.

토지가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축적하는 근원이라는 사실은 시대를 뛰어넘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이전에는 토지가 왕이나 지배층의 정복과 독점의 대상이었다면 오늘날 토지는 모든 이들의 욕망과 탐욕의 수단이라는 차이 외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언제부터 토지소유권에 대한 사적 소유가 인정된 것일까.

그 출발은 일제가 1912년부터 벌였던 토지조사사업에서 시작된다. 당시 일제는 종합적 식민지 정책의 하나로서 토지조사사업을 벌였는데, 이는 일본자본이 조선의 토지를 소유함에 있어서 존재하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세수를 증대하기 위한 것 등을 주목적으로 하였다. 한편 토지조사는 토지 소유관계를 근대화시킨다는 명분을 지니고 있었지만, 우리의 전통적 토지질서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일제는 토지조사를 하면서 토지에 대한 최초의 처분문서인 토지대장을 만들었는데, 이때 전통적 토지질서는 붕괴되고 만다. 당시 종중을 중심으로 한 유림사회는 비록 근대적 관념의 소유관념은 없었을지라도 경작권 등의 형태로 토지를 근간으로 경제기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봉건질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유림사회가 우리 전통의 한 축이었고, 그 근간을 뒤흔든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당시 일제는 토지사정을 함에 있어서 종중의 이름이 아닌 개인의 이름으로만 사정받을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는 명의신탁이라는 독특한 법리의 시작이 된다. 일제는 종중의 권리주체성을 부인하고, 종중재산의 등기조차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대신 종중재산의 등기를 종중원 개인이나 종중원의 공유로 등기하도록 하면서 종중재산을 명의신탁 법리로 다루었다. 이 명의신탁 법리는 지금까지도 분쟁의 이유가 되고 있다.

우리 판례는 종중원이 자신의 명의로 등기된 종중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한 경우에 “신탁행위에 있어서는 신탁자와 수탁자의 내부관계에서는 소유권이전의 효과가 발생하지 아니하지만, 제3자에 대한 외부관계에서는 표면상의 소유자는 진실한 소유자로 간주해야 하고, 제3자가 표면상의 소유자인 수탁자로부터 신탁의 목적인 물건을 매수한 경우에 신탁의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제3자는 완전하게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즉 판례의 논리대로라면 종중재산을 수탁 받은 종중원은 아무런 제한 없이 종중재산을 매도할 수 있고, 이를 매수한 제3자는 선·악의를 불문하고 완전하게 소유권을 취득하게 된다. 이것은 종중재산의 매각을 부채질하여 종중 해체를 가속화시켰고, 종중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물론 종중원은 횡령 또는 배임 등의 이유로 형사상 책임이나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으나, 이미 분쟁이 발생한 후에는 종래의 평화는 회복하기 어렵다.

이처럼 근대법 질서 도입단계부터 우리 사법질서는 왜곡되었고, 지금도 일제의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앞으로 연재되는 칼럼에서는 종중재산분쟁 등 관련 토지분쟁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종중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낯선 존재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국민 대부분이 종중원이라는 사실도 한번 쯤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 논의 속에는 ‘조상땅 찾기’라는 속물적 이유도 있지만, 전통과 미래세대의 만남이라는 발전적 논의도 함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유) 산우 김남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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