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톡] 우리가 페미니즘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배신
[BOOK 톡] 우리가 페미니즘이라고 믿었던 것들의 배신
  • 손수영 기자
  • 승인 2018.03.21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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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 자이슬러 저ㅣ안진이 역ㅣ세종서적)

앤디 자이슬러는 '페미니즘을 팝니다'에서 페미니즘이 상업적으로 포장되고 이용되는 과정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대중문화와 대중매체를 통하면서 본래의 의의가 어떻게 변질되고 퇴색되는지 보여준다.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권이 높아진 듯 보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라는 아주 기본적인 의제를 예전보다 더 자주 언급해야 하는 실상을 꼬집는다. 이 책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페미니즘 물결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정의나 역사적 계보를 다루는 입문서가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안내서도 아니고,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폭력과 성차별을 폭로하는 책도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페미니즘을 정의하고 선언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라고 착각할 수 있는 작금의 페미니즘 열풍을 재검토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자고 촉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언론에 화려하게 보이는 페미니즘과 현실과의 간극을 냉철하게 보여줌으로써 페미니즘의 현주소에 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완전한 평등을 위해 페미니즘을 어떤 방식으로 지속시켜야 할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시장 페미니즘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될 수도 없는 문제들이 있다. 우리가 ‘고약한 페미니스트’ 목걸이를 하거나 ‘다 가부장제 탓이오’ 티셔츠를 입어도 그런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페미니즘에 관해 뭐라고 말했든 간에 그런 문제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중문화와 페미니즘이 결혼하기만 하면 맛 좋고 내용도 진보적인 과실을 잉태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나 같은 사람들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요즘 대중문화 속에서 페미니즘이 발언권을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발언권은 언론 친화적인 페미니즘에게만 허용된다. 그것은 이성 간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지 않는 경제적 성공, 매력적인 외모와 신체의 자율성을 동시에 가질 권리에 집중하는 페미니즘이다" 「머리말」중에서

"달콤한 페미니즘은 여성들 간의 우애라는 단순한 주제를 내세우고 ‘당신을 지지합니다. 여성 만세!’라는 트윗과 인스타그램의 사진들, 여성 자신을 위해 옷을 입으라고 격려하는 잡지 기사들을 이용한다. 성평등은 투쟁의 슬로건에서 소비자 브랜드로 바뀌었다. 물론 피상적으로나마 대중매체와 대중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태도는 바뀔 수 있다. 대중문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문화가 절반쯤은 바뀌었고, 그것이 완전한 성공으로 가는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고 싶다" 「머리말」중에서

"왓슨의 연설은 심금을 울리고, 유창하고, 페미니즘의 기본적인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지는 않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쉬운 내용이었다. 왓슨의 히포시 연설은 전 세계의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자는 연설의 핵심 내용은 자취를 감추고, ‘페미니즘의 이미지는 당신들의 생각만큼 무서운 게 아니다’라고 남자들을 설득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마치 남자들이 평등을 지지하게 만들려면 그들의 개인적인 심정을 조금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처럼. 어느 블로거는 이런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재치 있게 설명했다. “[왓슨은] 남자들이 성평등을 위한 싸움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단지 여자들이 남자를 초대하지 않아서라고, 그리고 실제로는 남자들을 환영하지 않아서라고 암시하는 듯하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정식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들이 동참하지 않았다는 거라고 한다. 남자들이 성불평등 구조에서 굉장히 큰 이익을 누리고 있으며, 차별 철폐를 지지해서 얻을 것이 별로 없어서가 아니란다.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여성혐오 때문도 아니란다. 그저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 5장 ‘우리의 비욘세: 연예인 페미니즘」중에서

"나는 여권 신장에 대한 피로 증세가 심한 편이다. 여권 신장 피로를 일으키는 원인은 정말 많다. 지난 20년 동안 광고, 대중문화 상품, 페미니즘 수사를 통해 여성의 권능을 향상시킨다고 선전된 것들 중 일부만 나열해보자. 하이힐. 플랫슈즈. 성형수술. 주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아이 낳기. 아이를 낳지 않기. 자연분만. 무통분만. 뚱뚱한 몸 긍정하기. 거식증 긍정하기. 가사 노동. 게으르게 살기. 남자처럼 행동하기. 여자답게 행동하기. 호신술 배우기. 오토바이 타기. 자전거 타기. 걷기. 조깅. 요가. 걸그룹 따라하기. 금주. 종교 생활. 모태 신앙 거부. 좋은 친구 되기. 2003년 [어니언The Onion]의 한 기사가 “이제 여성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여권 신장의 수단이다”라고 선언했을 때는 정말로 “오늘의 여성들은 거의 24시간 내내 권능이 향상된 상태로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권 신장은 남용되고 있다. 물론 우리는 뭐든지 좋아할 권리가 있고, 사회가 하지 말라는 일들에 대해 좋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권 신장을 오직 여성과 페미니즘 운동에만 연결시킨다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흐릿해진다. 생각해보라. 모든 것이 여권 신장이라면, 사실은 아무것도 여권 신장이 못 되는 것이다"「 7장 ‘여권 신장의 역습」중에서

"문제는 페미니즘이 재미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있는 문제였다. 페미니즘은 원래 재미있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복잡하고 딱딱하며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페미니즘은 심각하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주로 다루는 문제들(임금 불평등, 노동의 성별 분업, 제도적인 인종차별과 성차별, 구조적 폭력, 그리고 당연히 신체의 자유도 포함된다)은 하나도 섹시하지 않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은 본질상 힘의 균형을 다시 맞추려 하고, 그래서 현재 힘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페미니즘이 유효한 것이 되려면 그래야 한다. 페미니즘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권리를 주장할 때 부드럽게 부탁해야 한다, 분노와 공격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사회의 거시적인 변화는 정중한 요청과 듣기 좋은 언어로 달성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되새기자. 페미니즘을 욕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장소에서 당신들에게 아무런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것, 바로 그것이 시장 페미니즘이다" 「맺음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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