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한국. 여행문학] 서울 용산편...땡땡거리에서 70년대 섬을 만나다.
[미디어한국. 여행문학] 서울 용산편...땡땡거리에서 70년대 섬을 만나다.
  • 박용신 논설위원장
  • 승인 2017.12.16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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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 선, 한강대로 21 나길, 멀리서 땡,땡,땡, 기차 지나는 소리가 들렸다.

[미디어한국=박용신 논설위원장] 우리는 가끔, 도심에 허름한 모퉁이를 걷다 보면 급박하게 변모해 가는 개발 환경 속에서 시간이 멈추어 선 듯, 과거의 표정으로 남아 은근하게 다가서는 낯익은 풍경(風景)과 마주하게 된다. 화들짝, 기억해낸 첫사랑의 데이트 장소처럼 묘한 끌림 속에서 그 거리를 배회하게 되고, 그 풍경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오랜 지기(知己)같아 다가가 안부를 묻고 악수라도 나누고 싶어진다. 그들이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은 그들은 그 곳에서 적어도 3,4십 년씩 청춘을 묻고, 먹고 살기 위해 우직하게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온 우리네 서민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현장(용산역 한강대로길 골목에서 새남터까지)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러 떠나 보자.

▲ #뿌리서점, 책이 주인을 기다린다는 글귀가 이채롭다. 젊음을 다 바친 김재욱씨의 평생 직장

늦은 밤 저녁 9시,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시간, 그의 일손이 분주하다. 새벽 3,4시까지 계속되는 책 분류 작업, 여러 곳, 여러 사람들의 의해 수집된 각양 각색의 책들,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에 의해 모아진 책이라 될 수 있으면 후한 값을 쳐 드리고 구입 하지만, 때론, 폐지(廢紙) 로 버려야 할 책도 있고, 때론, 아주 희귀한 원본의 책들도 있단다. 그렇게 수집되어온 책들이 꼭 필요한 사람들 손에 들어가 소중하게 읽히고 간직되게 될 때 무한한 보람을 느낀다는 책방 주인 김재욱(68)씨, 79년부터 용산, 여기서 책방을 운영 했으니 올해로 꼭 37년째란다. 슬하의 2남1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같은 또래의 동료들은 이미 퇴직하여 빈둥대는 이 힘든 세상에서 은퇴가 없는 이 직업이 얼마나 감사하냐며 씽끗 웃는다. 

그는, 하루에도 2,30명씩 우리 "뿌리서점"을 방문해 주는 고정 독서 팬들이 있는데, 그들을 헛걸음 시킬 수가 없어서 토, 일요일에도 결코 문을 닫을 수가 없단다. 책을 사고 안 사고를 떠나, 이 곳을 방문해 주는 그들께 늘 미안한 것은 어디 걸터 앉아서라도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몸 하나 간신히 비벼 돌릴 수도 없으니, 그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한 때는 책이 잘 팔려 큰소리치며 친구들에게 술잔께나 돌리던 호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인터넷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굳이 책을 접하지 않고도 많은 정보의 공유가 가능하고, 요즘 젊은이들은 책읽기 보다는 게임을 더 좋아하며, 유명 기업들의 대형 서점 진출로 부쩍, 책을 찾는 이들이 줄어 이제는 이 책장사도 사양 사업이 되었단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책 읽는사람들을 위해 이 책방을 지키리라 다짐하는 김재욱씨.                                                                                                                                       

"뿌리서점"은 용산역 광장에서 한강 쪽 건널목을 건너 '용사의 집' 왼편 담벼락을 끼고 돌면 여성회관이 나타나고 그 건물 오른편 귀퉁이에 "뿌리서점"이라는 작은 입간판이 보이는데 이 곳 지하가 "뿌리서점"책방이다.

▲ #새벽 열차가 불을 밝히며 백빈 건널목을 통과하고 있다. 그대가 잠든 시간에도 열차는 움직인다.

"땡!,땡!,땡!..." 두 개의 빨간 신호등이 점멸하고 차단기가 내려오자 건널목을 건너던 사람들이 일제히 멈추어 서서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철거덕, 철거덕..." 기차가 건널목 굽이 길을 돌아 사라지자 차단기 앞에 멈추어 섰던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여 건널목을 건너가고 귓가에는 '기차길옆 오막살이' 동요가 찰랑거린다. 3분일까? 4분쯤일까? 잠깐의 멈춰 선 시간, 누구에게나 무언의 약속으로 지켜지는 질서의 시간, 함부로 어겨서는 안 되는 선이 존재하는 곳, 용산역, 철도회관 골목길 동남쪽 500m 지점쯤에 위치한 백빈 철도건널목이다. 이 곳으로는 경춘선 itx, 중앙선 전철, 화물 열차 등, 하루에도 300여회씩이나 열차들이 왕래하는 이제 서울에서 몇 안 남은 유인 건널목이다.

백빈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 내명부 정1품 빈(嬪)의 서열에 오른 백씨 여인이 궁에서 퇴임하고 이곳에 살아서 얻어진 이름이며, 이 곳을 기점으로 다시 50m 지점쯤에 단선으로 된 삼각 백빈건널목이라 불리는 무인 건널목이 하나 또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300m 지점, 큰 행길이 나올 때 까지가 70년대의 시간과 공간이 멈추어 선 소위 말하는 "땡땡이 거리"이다. 옛날의 학사주점이 있던 종로 피맛골 같은 곳, 지금도 이 곳에서는 드라마나 영화들이 시도 때도 없이 촬영되어지고 있다.

백빈 건널목을 지키는 철도 안전지킴이 박순일(56)씨는 요즘 봄철을 맞아 한강공원으로 넘어가는 행락객의 왕래가 부쩍 늘었다며 차단기가 내려 갔음에도 그것을 밀고 막무가내 건너 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무척 신경이 쓰이는데, 기차가 들어 오기 전 미리미리 대처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고, 위급한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며, 철도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 # 떠 있는 한 개의 섬, 거기에서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 그리고 떠나지 않는 70년대 시간.

이른 새벽, 방앗간에서 떡 찌는 김이 푸짐하게 피어 나온다. 빼꼼이 열려진 문틈을 들여다 보니 방금 시루를 엎어 놓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설기 콩떡 한 시루, 고였던 침이 꼴까닥 넘어 간다. 염치 불구 문을 밀고 들어가 떡이 먹고 싶은데 파실 수는 없느냐고 여쭈었더니, 일을 거들고 계시던 안주인께서 주문 들어온 것이라 팔지는 못하고 얼른 한 덩이 베어 먹어 보라고 건네준다. "너희들이 이 떡 맛을 알아?" 아! 그 맛,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 #평생을 바쳐 일해 온 박장운씨의 방앗간 일터.

백빈 건널목을 마주보며 '기차길옆 오막살이'로 방앗간을 운영하는 박장운(69)씨, 이 곳에서 산지가 벌써 50년도 더 된 땡땡거리의 산 증인이며 토박이이다. 1남1녀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이제는 자식들도 다 결혼시키고 경제적 자립도 했으니 이 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강원도에 집지을 땅뙤기도 마련했는데, 아내가 선뜻 답을 주지 않아 기다리는 중이라며 환하게 웃는 떡의 달인(匠人). 그에게서 전형적 대한민국의 아버지상을 느낀다. 이야기 도중 다시 땡땡거리는 소리, 그리고 "철거덕" 대며 기차 지나가는 소리, "어떠세요. 저 소리들이 귀찮지 않으시나요?" 사실 젊어서 결혼하고 얼마나 저 소리가 듣기 싫었었는지, 하지만 힘들고 지칠 때는 엄마의 자장가처럼 위로가 되기도 했다고 담담히 말하는 여주인,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이 삶의 터전에서 인생살이와 더불어 편안한 소리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마치고 카페 "에스크'에서 커피를 마시고 새남터 순교성지로 향했다.

한강변에서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직은 추운 겨울, 엄숙한 성당의 담벽사이로 미쳐 잎과 이별 못한 시든 녹색 수양버들 가지가 하늘댄다. 고전 드라마에서 참형장으로 자주 등장하는 새남터, 마음에 주눅을 억누르며 경내로 들어선다. 순교성지 새남터는 조선초기 한양성 시절, 한강변에 위치해 "노들", "사남기"라고도 불리었던 곳으로 군사들의 훈련장과 중죄인(重罪人)을 처형하는 사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세조 때 사육신도 이 곳에서 처형 당했다. 특히,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가 순교한 뒤 조선천주교회 4대 박해(신유, 기해, 병오, 병인)를 거치면서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많은 초대 성직자들이 처형, 순교하였다.

▲ #천주교 순교성지 새남터 기념 성당.

1950년 한국천주교 순교 사적지로 지정된후 1956년 "카토릭 순교성지"라는 순교자 현양비(顯揚碑)가 세워졌고 1981년 새남터 성당, 본당을 설립하고 1987년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한국 전통양식의 기념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현재 순교성지 새남터 성당에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아홉분등, 총14분의 성인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 #예수님과 순교자 김대건 시성의 초상화, 그리고 흉상

조선시대, 격동의 변환기에서 새남터의 기구한 역사를 살펴본 후 2층 성당으로 올라가 중앙, 가깝게 더 가깝게 예수에게로 나아가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를 드렸다.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는 땡, 땡, 땡, 땡땡거리에 땡땡 소리. 그렇게 용산역에서 새남터까지 골목기행, 하루가 갔다. 

(백암 박용신의 여행문학 bag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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