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분노의 사회,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칼럼) 분노의 사회,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 이정우 기자
  • 승인 2016.06.15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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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한국//이정우기자)       이동우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 사회가 분노로 끓어 오르고 있다.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좌절과 분노를 지칭하는 분노세대, 분노사회 같은 사회학자의 분석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연전부터는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건 보도들이 종종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사실 분노조절장애는 정신의학적으로 흔한 질병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매스컴에 반복 보도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분노가 위험 수위라는 방증이 아닌가 우려하게 만든다.

  작년에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정도가 상당한 분노 감정을 경험하고 있으며 11%는 치료가 필요한 분노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찰청 치안정책 연구소는 ‘2016 치안전망 보고서’에서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반사회적 성향의 보복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고 올해 초에 국민통합위원회가 발간한 ‘한국형 사회 갈등 보고서’는 “우리 사회가 분노사회를 넘어서서 원한사회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처럼 끓어오르다 못해 폭발해 대한민국호에 큰 손상을 줄지도 모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노에 대한 긴급 진단과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분노란 욕구 좌절에 대한 반응이거나 생존을 위협하는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이러한 자극을 만났을 때 우리 뇌의 감정 중추의 일부인 편도체에서 분노 자극이 유발된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이 일었다고 해서 모두 공격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뇌의 편도체에서 분노가 유발되는 순간 뇌 고위 중추인 전두엽 속에서 ‘나의 분노가 정당한가?’라는 자기 성찰과 자기 제어의 기제 또한 반사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분노의 감정과 그 공격적 표출이 증가 일로에 있는 것은 생존의 위협 또는 욕구 좌절과 같은 분노 유발 요인의 증가로 뇌의 편도체가 달아올라 있는 반면, 뇌 전두엽 기능은 마비되어 자기 성찰과 자기 제어의 기능은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라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우리 경제의 성장속도가 둔화되면서 국민들의 욕구 좌절이 증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70대 이후의 압축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득의 급속한 증가를 경험하면서 ‘하면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경제적 성공과 성취에 대한 욕구가 한껏 고조되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경제 성장의 둔화 국면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청년들의 실업난과 장년층의 조기 퇴직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성장기에 고조된 성취욕구가 전 세대에 걸쳐 좌절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분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이유는 IMF와 금융위기에 의한 중산층이 붕괴 과정이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IMF 사태로 인한 대량 해고의 충격은 국민들 마음 속 깊이 심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추락의 공포로 자리잡았고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한국경제 위기설이 반복 제기될 때마다 이러한 공포가 자극되면서 분노 유발의 방아쇠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노 제어 기제의 약화는 이처럼 정당한 성취 욕구가 좌절되고 생존의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이유가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구조적 원인에 있다는 인식이 점증하면서 좌절과 위협을 경험하는 개인에게 내가 아닌 남을 탓하는 ‘투사’의 방어기제가 활성화되고 있음에 기인한다.

  앞서 언급한 ‘한국형 사회갈등 보고서’는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 주는 내용들을 보여주고 있다. 동 보고서는 우리 사회에 ‘희망’이 사라지고 ‘좌절과 포기’의 정서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또 우리 국민들이 세대를 막론하고 생존 불안으로 인해 뭔가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강박심리에 시달리는, ‘불안을 넘어선 강박’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으며 ‘수저론’으로 표현되는 사회 양극화가 우리 사회를 ‘분노사회’를 넘어선 ‘원한사회’로 변모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날로 증폭되어 가는 분노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분노의 정서가 행동화되는 과정부터 차단할 수 있는 처방이 필요하며 그러한 해법을 분노의 정당화를 막아줄 수 있는 사회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어야 한다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제안한 대로 ‘희망사다리’를 회복해 노력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며 사회 양극화를 극복, 중산층을 회복시켜야 한다.

  아울러 개인적 차원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 분노 감정에 압도되어 마비되어 버린 뇌 고위 중추의 기능을 되살려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급속한 경제 발전의 성과를 내고도 각종 행복도 조사에서 하위를 면치 못하는 우리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울증에 걸린 중년 남성의 심리와도 같은 상태이다.

‘  잘 살아보세’의 기치 아래 전 국민이 국가 경제 성장과 개인 소득 증대라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 왔으나 실패한 사람은 물론, 성공한 사람들마저도 심리적 공허감에 빠진 상태인 것이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지나친 외적 성공의 추구가 우울증의 원인이 됨을 갈파한 바 있다. 인간은 사회생활 속에서 타인과 사회의 기대를 반영한 외적 인격인 ‘페르조나’를 발달시키는데 페르조나와 자아를 지나치게 동일시할 경우 자아와 내적인 정신세계로부터 단절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잃게 되어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은 외부로만 향해 온 자아의 시선을 안으로 되돌려 내면의 공허를 극복하고 내적인 정신세계를 살찌우는 목적 의미가 있다고도 했다.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더 높이’를 외치려 외면적 성장만을 추구했고 우리 마음을 소홀히 해왔다 이제 우리 마음을 돌아보고 돌보기 위한 ‘더 깊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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